한강 공원 산책로 옆에 벌써 큰봄까치꽃(큰개불알풀)이 피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 왜 이런 이름일까요.
작년 3월 중순쯤에, 한강 산책로 옆 풀밭에서 봄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해 봄으로는 한강에 처음 나간 것이었는데, 봄꽃들은 이미 여러 종류가 피어 헤아리는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봄꽃의 처음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다음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기온의 변화가 심하더니 오늘은 낮 기온이 15도까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냉큼 운동하는 산책 방향을 한강 쪽으로 잡았습니다. 겨울옷은 덥게 느껴졌고, 아직도 누런 잔디밭에는 벌써 텐트와 돗자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상춘객'의 풍경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돗자리와 먹을 것과 강아지와 어린아이들.
구경도 잠시, 어디선가 피어있을 꽃을 찾느라 풀밭 가장자리를 눈여겨 살피기 바빴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살짝 숨어있는 꽃을 발견했습니다. 날이 따뜻하더니 재빨리 봄꽃이 피어버렸습니다. 1cm도 안 되는 작은 꽃이지만 푸른색이 제법 눈에 잘 뜨입니다. 계속 피고 지고 하는지 여름까지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질경이과이며 4장의 꽃잎을 가지고 있고, 햇빛이 없으면 꽃잎이 닫히는 하루살이꽃이랍니다. 어쩐지 흐린 날에는 꽃이 영 보이지 않았습니다.
2월 17일의 탄생화로 되어 있고,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큰개불알풀로 많이 불리는데, 이 이름은 꽃보다 씨앗이 크고 꽃이 진 후에 맺힌 씨앗의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본 이름을 직역하여 '큰개불알풀'이라고 불렀으나 어감이 좋지 않아 봄까치꽃이라고 고쳐서 부른다고 하네요.
참고로 '큰'자가 붙지 않은 개불알풀은 꽃 크기와 색이 다릅니다. 2~3mm 정도로 너무 작아서 가까이 가서 봐야 보일 정도입니다. 좁쌀만큼 작아요. 꽃의 색은 분홍색입니다.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은 이 작은 개불알꽃에 준 이름입니다. 큰개불알풀을 대신하는 이름은 큰봄까치꽃이지요. 그러나 검색해 보면 큰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은 잘 쓰지 않고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로는 bird's eye 라고도 합니다. 작은 암술 하나와 큰 수술 2개를 갖고 있는데, 이 수술 2개가 마치 새의 눈처럼 보이나 봅니다.
학명은 Veronica persica인데 베로니카의 복숭아라는 뜻이랍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걷는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베로니카가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는데, 그 손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비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개불알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예수의 얼굴이 비친다고 합니다.
개불알꽃(학명 Cypripedium macranthum)이 따로 있는데, 난초과이며 '복주머니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어 있으니 우리가 길에서 볼 일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비너스의 슬리퍼라는 이름의 신화를 갖고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위키백과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질경이과의 개불알풀, 난초과의 개불알꽃 - 이 둘은 전혀 다른 종족이었습니다.
봄까치꽃 (이해인)
까치가 놀러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꽃
노래처럼 다시 불러 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그렇게 살면 좋겠다지만 잊혀지는 것은, 글쎄요. 제 자리를 지키며 사는데 잊혀지면 슬플 것 같습니다. 이름이 불리어야 봄꽃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작은 봄풀들도, 그 이름을 가능하면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요. 이름이 불리어서 좋고, 뇌를 훈련시켜서 좋고.
너무도 흔한 큰봄까치꽃(큰개불알풀),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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