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읽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끝까지 읽거나 보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집에 책이 많지도 않았지만 여러 번 되풀이 읽는 것은 당연했고
같은 반 친구들 집에서 무겁게 한 묶음씩 빌려와 읽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는 티브이 편성표에 여기저기 밑줄 그어놓고
만화, 영화, 드라마 연달아 보기 일쑤였다.
티브이 드라마에 빠졌을 때는 외출했다가도 드라마 시간 맞춰 서둘러 귀가하기도 했다.
단 한 회라도 못 보면 드라마를 포기해 버리는 이상한 고집도 피웠다.
지금은 도서관이 사방에 있고, 도서관 안 가도 되는 전자책도 있다.
시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있다.
매일 새로 올라오는 웹소설과 웹툰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변했다.
넷플릭스 가입만 하면, 모두 다 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도대체 어릴 때는 어떻게 무조건 다 끝까지 읽고 볼 수 있었을까?
무서워서 손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서 숨으면서도 보았던 기억.
지금은,
무서워서 피하고, 음울해서 안 보고, 지저분해서 싫고,
희망 없이 암담해서 싫고, 황당해서 안 보고, 슬퍼서 안 보고,
새드엔딩이 싫고, 너무 많이 죽어서 싫고,
심지어 화면이 어두워서 싫고...
지금이 아니면 못 본다는 간절함이 없어져서일까.
1회만 보다만 드라마, 25회까지만 보고 마는 웹소설, 5분쯤 보다만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취향이 아니라서'라는 이유야 받아들이지만,
몇 해 전,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났다.
시작부터 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웃음이 지어지는 즐거운 드라마였는데,
4회까지 보고 중지했다.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은데도 달달한 한 쌍이 결국 헤어지는 걸로 끝날 거 같아서,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마음 아플 듯해서, 헤어질 모습이 보기 싫어서
초반 달달한 장면만 보고 드라마를 끊었다. 미리부터 가슴이 아파왔던 탓에.
그때쯤 알았다.
새드 엔딩뿐 아니라, 고생하는 걸 보는 것도 이제 싫어하는구나.
그러나, 극복하는 과정의 고생이 없는 '스토리'가 과연 있는가.
결국 신나는 사이다 장면만으로도 이야기가 가능한 웹소설이 손에 쥐어진다.
중간중간 약간의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난관이 있으나
이미 알고 있거나, 사소하거나, 기연을 얻는 과정일 뿐인 그런 웹소설.
언제나 강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
웹소설 중 하나, '재벌집 막내아들'이 영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이런 것은 늘 궁금해서 보게 된다.
둘을 동시에 보다가 그 괴리감에 드라마 시청을 멈추고 소설을 먼저 완독 한 뒤
사이를 두고서 완결된 드라마를 보았다.
소설의 이미지는 '사이다'였으나,
드라마의 이미지는 '드라마'였다. 드라마에는 고난이 빠질 수 없고,
소설 그대로라면 황당했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새롭게,
영상보다 글로 된 것을 더 편하게 본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지는 너무 자극이 강하다. 글이 주는 자극 쪽이 내겐 더 부드럽고 편안하다.
영상이 편안하고 부드러우면 지루하다고 할 터이지만.
어쨌든 난 오늘도 결말이 해피 엔딩이길 바라며
웹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고르고, 책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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